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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때요, 보여요? 아름답지 않아요?”

 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를 보고 있던 석류색 눈동자가 쿠레시마 미츠자네 쪽으로 돌아간다. 나나하라 이브는 제 드레스 자락을 잡아끌었다. 무너져가는 예식장, 아무도 오지 않는 자리에서 이브는 미츠자네의 옆에 앉았다. 검은 장미가 달린, 나비를 형상화한 검은 자락. 퍼지지 않지만 넉넉한 치맛단은 두겹으로 되어 있어 하늘하늘함을 더했다. 옆에 앉은 것은 같이 검은 장미 장식을 한 흑정장을 입은 미츠자네였다. 예견된 종말로 떠나는 이브를 배웅하게 된 미츠자네는, 그게 전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었다.

 “여기서 보는 은하수가 가장 아름다워요. 자와메 시는 밤에도 네온사인이나 전등이 켜져 있는 편이라 별이 잘 보이지 않는데, 여기서는 이상하게 저렇게, 환하게 보이더라고요.”

 “이 예식장은 이제 쓰지 않는 곳이지.”

 “네.”

 “그래서 그럴 거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니까, 원래 자연은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을 때 가장 찬란하잖아.”

 미츠자네는 올라올 것 같은 울음을 삼키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었다. 예견되어 있던 개인적인 종말. 이브의 생은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3개월 전에도, 1개월 전에도 고해졌던 예견된 종말. 이브의 목숨이 15일 남았을 때, 미츠자네는 이브의 꿈을 들었었다. 결혼식에 가보고 싶어. 몸이 약해서 그런 사람이 많고 복잡한 행사에 가본 적은 없었거든. 작게 속삭이는 소망을 모르는 척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츠자네는 그것을 들어주자고 생각했다. 더불어, 자신의 마음마저 채워버리자고 생각했다.

 “저랑 해요, 결혼식. 둘밖에 없는 결혼식이 될 테지만, 그래도 이브 씨가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건 달라지지 않잖아요. 둘뿐이니까 괜찮을 거예요.”

 이브는 거절하지 않았다. 다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미츠자네는 이브에게 한참 결혼 계획을 조잘거렸다. 막 떠오른 생각이지만 누구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브는 환하게 웃었다. 여명 1개월을 선고받은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되지 않을 만큼 환하게.

 단 두 사람만의, 나이도 차지 못한 결혼식.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한밤중의 결혼식. 이브의 생이 7일 남았을 때 옷을 구하고, 이브의 생이 4일 남았을 때 결혼식 일정을 고하고, 그렇게 이브의 마지막 날, 미츠자네는 이브를 데리고 예식장 한쪽에 앉았다. 생의 고비를 넘겼다가도 다시 이른 죽음을 맞을 뻔한 적이 수십이다. 이브는 호흡기 없이 자신이 여기 앉아있는 것을 기적이라 여겼다.

 “미츠자네, 봄의 대각선 알아? 잘 봐.”

 이브가 오른손 검지를 펴 하늘을 이었다. 이브는 본디 별을 잘 알거나 별에 관심을 크게 가져 행성이나 항성 따위에 박식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닳도록 읽은 별을 주제로 한 소설의 주인공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미츠자네의 시선이 이브의 손끝을 따라간다.

 “북두칠성의 휘어진 손잡이 부분이 알카이드야. 거기서부터 동쪽으로 갔을 때 가장 밝은 별이 아르크투루스.”

 이브가 별 하나를 짚었다. 눈에 들어올 정도로 반짝이는 별이 미츠자네의 시야에 걸렸다. 이브의 손가락과 함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다.

 “그대로 따라 내려가면 스피카. 이게 봄의 대곡선이야.”

 그 책은 미츠자네가 사준 것이었다. 미츠자네가 그 내용을 모를 리가 없었다. 같은 것을 두 권 사서 이브에게 한 권, 자신에게 한 권 선물한 게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므로. 미츠자네는 별다른 말을 뱉지 않으며 이브의 옆얼굴을 보다가, 느릿하게 시선을 돌려 이브의 손끝을 바라본다. 미츠자네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이브의 손이 그대로 옆으로 움직인다. 소설의 묘사와 똑같았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그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봄의 대곡선을 그리는 법과 봄의 대삼각형을 그리는 법을 알려주었다. 미츠자네는 울고 싶었다.

 “데네볼라. 이렇게 봄의 대삼각형이야.”

 이브는 미츠자네 쪽을 돌아보았다. 기억할 거야? 속삭이는 목소리에 미츠자네는 웃으며 두 손으로 이브를 잡고 일으켜 주었다. 당연하죠. 곧 바스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다정을 노래했다.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보일 수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하니 웃고 싶었다. 울고 싶었으나 웃고 싶었다.

 “이브 씨, 이거.”

 미츠자네가 이브에게 꽃다발을 건네었다. 봄날에 걸맞은, 그리고 이브에게도 어울리는 화려한 듯 수수하고, 차분하며 어딘가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봄날의 부케. 이브는 한 손에 부케를 들고, 미츠자네에게 손을 건네었다. 식이 시작될 시간이니 신부를 신랑이 인도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 미츠자네는 부드럽게 이브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 에스코트하듯 움직이며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드레스 치마는 자칫 길어 보였으나 손으로 약간 들어 올린 것처럼 바닥에서 살짝 떠 있어 들러리 없이 걸어도 치맛자락이 바닥에 끌리지 않았다. 틈으로 보이는 구두는 광이 나지 않아 무던해 보였다. 달빛을 받으면 옅게나마 광이 나는 미츠자네의 구두와는 정반대였다. 포인트를 준 듯 흰 손수건이 있는 것 외엔 셔츠와 넥타이마저 온통 흑색으로 물든, 단정한 흑정장을 차려입은 미츠자네가 웨딩홀의 문을 열었다. 식의 시작을 예고하듯 커다란 문이 나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커튼이 낡아 해지고 불은 이제 더 들어오지 않는다. 신랑과 신부를 위한 레드카펫은 먼지가 쌓여 붉은색이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군데군데 무너진 구석마저 보이고, 하객용 테이블이나 의자는 난장판이 되어 누구도 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주례도 사회도 없다. 당연하게도 하객도 피로연도 없다. 미츠자네는 천천히 이브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선다. 고요만이 존재하는 곳은 검은 드레스와 검은 정장의 연인을 축복해주기 알맞았다. 이브는 미츠자네의 팔에 손을 얹은 채 한 손으로 부케를 들었고, 미츠자네는 여전히 이브를 이끌 듯이 왼쪽에서 차분하게 걸었다.

 주례도 없는 단상 앞에 서서 마주 본다. 미츠자네가 부케를 들고 있는 양손을 감싸듯 잡고 눈을 감는다. 미츠자네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이브는 감은 눈을 바라보고 있다가 따라 눈을 감는다. 이브는 언젠가 잊히는 필멸의 존재에 대해 한참 생각한다. 미츠자네가 받을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이브는 아직도 자신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사랑하는지, 연민하는지, 동정하는지, 친애하는지. 미츠자네는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브 씨…….”

 미츠자네는 다시 눈물을 삼킨다. 이브는 늘 그랬듯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한다. 불쌍한 미츠자네, 그러니까 왜 나를 좋아했어? 뱉을 수 없는 물음을 삼킨다. 서 있는 것도 벅찬 이브로서는 모든 것이 힘에 부치기만 하다. 나비 날개를 형상화한 등의 리본이 자꾸만 이브의 발목을 간질인다. 이브는 내색하지 않으며 풀썩 주저앉고 싶어지는 마음을 애써 참는다. 여기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되새기면서.

 미츠자네는 이브의 상태를 빠르게 눈치챈다. 기민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를 단상 앞 계단에 앉히고, 단상에 몸을 기대게 한다. 가쁜 숨에 불안감이 치솟는다. 아직 안 돼. 한 문장이 미츠자네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미츠자네가 식은땀을 흘리는 이브의 어깨를 감싸 끌어안았다. 잃고 싶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고 했던 갖은 노력이 무색하게 이브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되니 얼굴이 제멋대로 구겨진다. 이브가 손을 뻗어 미츠자네의 뒷머리를 쓸었다. 다 괜찮다는 듯이. 정작 괜찮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미츠자네는 한참 이브를 놓아주지 않다가 겨우 품에서 떼어내고, 여전히 양손을 잡은 채 손등을 천천히 쓸었다. 울음을 눌러 참느라 멘 목이 겨우 목소리를 뱉어낸다. 미츠자네는 다시 웃는다. 이브는 미츠자네가 눌러 참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브 씨, 기억하세요? 우리가 가장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이브 씨가 제게 가장 처음으로 해줬던 말.”

 “……살아. 너를 놓지 마. 생은 아름다워.”

 미츠자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말을 하셨던 거예요? 제가 죽을 것 같았어요?”

 “모르겠어. 그냥, 그때 그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어.”

 미츠자네는 한참 하고 싶은 말을 누르다가, 누르다가, 결국 안 되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버석한 입술이 따가웠다. 울음을 참느라 계속 짓누르고 있던 탓이었다.

 “저는 그 말 때문에 살고 싶었어요, 이브 씨. 이브 씨가 그 말을 해주셔서, 아무도 저를 보지 않고, 철저하게 제가 혼자였던 그때, 당신이 제게 생은 아름답다고 해주셔서, 더 살고 싶었어요.”

 이브가 미츠자네의 얼굴을 본다. 구름 사이에 가려졌던 달이 고개를 내밀어 예식장에 빛을 보내면, 이브가 그 빛에 기대어 미츠자네의 얼굴을 살핀다. 잊지 않겠다는 듯, 눈으로 사진을 찍듯 한참 보다가 손을 뻗어 미츠자네의 얼굴을 쓰다듬고 매만진다. 시각보다는 촉각에 기댄다. 눈이 어두워진 탓이다. 죽음을 예고하는 그 모든 증상을 애써 외면하며 조금 더 다가가 미츠자네의 기색을 살피고, 얼굴을 눈에 담는다. 그러다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간다. 아무리 봄이라고 해도 추워진 탓이다. 이 또한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명임을 이브는 알고 있었다.

 “내 덕에 살고 싶었다니, 아이러니하네.”

 “하지만 진심인 걸요. 죄책감과 후회로 점철된 나날을, 죽지 못해서 이어갈 뻔했던 저를 온전한 생으로 이끌어주셨어요, 이브 씨는. 생을 통틀어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사람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브 씨. 저를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거라고 멋대로 생각해도 될까요? 허락해 주실 거예요?”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해. 죽음은 고통스러운 거니까, 이렇게 이르게 겪지 않아도 될 사람이 운명을 앞당기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브가, 죽음은 고통스럽다고 담담하게 고하고 있었다. 미츠자네는 이 모든 것이 아이러니라고 느끼면서 이브를 다시 끌어안았다. 어째서인지 몸이 참 차갑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체온을 잃어갈 필요는 없는데. 미츠자네는 제법 다급해지고 간절해졌다. 제발, 단 세 시간이라도 좋으니까 이 모든 것이 끝나고, 이브 씨께 준비한 모든 걸 보여주고 나서야 그가 눈을 감기를. 미츠자네는 이브를 다시 단상에 기대게 하고 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내었다. 안엔 반지가 들어 있었다. 작은 자수정이 박힌 반지가 달빛을 받아 일순 반짝거렸다. 미츠자네는 반지를 빼내 이브의 왼손 약지에 끼워주었다. 혼인을 증명하는 반지가 된 셈이었다.

 “자수정은 보라색이잖아요. 붉은색은 사람의 피를 상징하고, 푸른색은 하늘을 상징한다는 말이 있어요. 즉 자수정은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보석인 거죠. ……이브 씨가 하늘이 되고 제가 사람으로 남으면 이 자수정이 우릴 이어줄 거예요. 우리는 계속 이어져 있을 거예요. 그렇죠?”

 미츠자네가 습기가 섞인 먹먹한 음성으로 나긋하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자수정이 다시 달빛을 받아 맑은 보라색으로 빛난다. 이브가 왼손으로 미츠자네의 왼손에 깍지를 낀다. 이마를 맞대고 잔잔하게 부서지는 호흡을 감히 상대가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주례도 사회도 하객도 피로연도 없지만, 이브 씨는 저랑 결혼한 거예요. 제가 평생 사랑할 사람은 이브 씨고, 이 결정에 후회는 없어요. ……이브 씨는 어때요. 결혼식, 너무 조용해서 기대랑은 달라요?”

 이브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머리에 달린 장미 코르사주가 흔들려 모조보석이 앞뒤로 흔들리다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플라스틱 소리를 내었다.

 “좋아, 예식장도, 분위기도, 상대도.”

 미츠자네는 입꼬리를 당겼다. 울고 싶을 때마다 애써 참아가며 웃었다. 앞니로 입술을 짓이겨 눈물을 안으로 집어넣고 웃음을 바깥으로 꺼냈다. 지금 이 순간도 다를 바는 없었다. 다시 입술을 짓이기는 순간이었다. 이브가 엄지손가락으로 미츠자네의 아랫입술을 누른 것은. 한참 정적이었다. 미츠자네도 이브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미츠자네의 당황한 낯과 이브의 여상한 무표정이 교차했다.

 “울지 마.”

 이브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말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몇 번이나 울음을 삼키는 것을 이브에게 들키지 않을 수는 없었다. 미츠자네는 고개를 끄덕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미츠자네의 눈가가 점점 붉어지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외면했다. 구태여 입에 담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창백한 이브의 입술이나, 미츠자네의 붉어진 눈시울이나, 이따금 조금씩 비틀거리는 이브의 걸음. 예견된 종말로 치닫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으므로, 두 사람은 종말이 초읽기를 시작한 것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누구도 종말을 언급하지 않는다.

 홀을 빠져나와 예식장을 한 바퀴 돌며 구경을 하는 것도 잠시였다. 이브의 상태는 초와 분을 다투며 나빠지고 있었다. 결국 가장 상태가 좋은 웨딩홀 안으로 들어가 하객용 의자에 한참 앉아 있어야만 했다. 미츠자네는 안쪽에 쉴만한 공간이 없나 살펴보다가 신부대기실을 발견하고 이브를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이브는 신부대기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미츠자네의 만류에도 꿋꿋했다. 이브는 자신의 드레스를 한참 보다가, 등허리에 달린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꼭 날개 같았다. 옷 곳곳에 있는 장미 장식을 살피기도 하고, 머리에 달린 코르사주를 매만져 어수선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옷을 입어보고도 몇 번이나 살핀 모습이었으나 한 번 더 옷매무시를 가다듬게 되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케 두고 와버렸어, 어쩌지.”

 반지를 받을 때 내려놓은 것을 들고 오지 않은 사실을 이제 깨달은 듯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미츠자네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이브의 당황을 잠재우려는 듯 이브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고 두어 번 토닥인다. 무언의 행위였으나 꼭 괜찮다고 속삭이는 말이 동반된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제가 어서 가서 가져올게요. 소파에 앉아 계세요.”

 이브의 뒤에 선 덕분에 거울에 미츠자네의 차림도 비쳤다. 가슴에 꽂힌 흰 손수건 외엔 온통 까만 흑색 정장. 손수건마저도 끝엔 자수로 흑장미가 수놓아져 있었다. 새삼스럽게 둘은 서로에게 꼭 맞는 의상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미츠자네는 천천히 소파에 이브를 앉히고 신부대기실 바깥으로 나갔다. 이브가 발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범위 내에서는 여유를 보이듯 느릿하게 걸었으나, 예상 범위를 벗어났다고 생각하자마자 다급하게 달려 부케를 챙겨 돌아왔다. 이브에게 얼마 시간이 남지 않은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너무 뼈저리게 알고 있어서, 병을 앓고 있지 않은데도 누가 심장을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파져 왔다.

 미츠자네는 신부대기실 문을 열기 전에 숨을 천천히 골랐다. 뛴 것을, 자신이 당신의 죽음이 도래할까 불안해하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신부대기실 문을 열었다. 앉혀둔 게 무색하게 이브는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다가, 미츠자네의 손에 들린 부케를 보고 화색했다. 미츠자네는 다시 이브에게 부케를 안겨주었다. 미츠자네는 자기도 모르게, 이브에게는 몇 시간이나 남았을까 가늠해버리고 말았다.

 “미츠자네에게는 마지막까지 매번 받기만 하는구나.”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의상 준비도, 이런 예식장이 있는 걸 알아본 것도, 부케를 준비한 것도.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이브는 대답 대신 미소를 돌려주었다. 바깥을 보면 달이 다시 구름 사이로 얼굴을 숨겼다. 꼭 비가 올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그런 사실을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깨달았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이 무너져가는 버려진 예식장은 꼭 두 사람만의 안식처였다. 누구도 그 싸구려 일회용 안식을 잃고 싶지 않아서 속으로 삼키는 말이 많았다. 미츠자네가 신부대기실 한 편에 나 있는 창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이브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피부로 느껴져서 호흡마저 괴로웠다. 이브는 달빛을 받은 미츠자네의 옆얼굴을 보다가, 부케를 내려놓고 미츠자네를 한껏 끌어안았다. 어깨 위로 두른 팔에 최대한의 힘을 주었다.

 “울지 마, 미츠자네……. 괜찮잖아, 응? 나 행복해, 진짜로.”

 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전부 아는 건지, 미츠자네는 울지 말라는 말에 더 감정이 북받쳐서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다시 자신의 말을 곱씹는다. 영영 사랑하겠다는 말, 절대 후회 없을 거라는 말. 전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짧고 보잘것없는, 형편없는 결혼식이 막을 내렸다.

 둘은 신부대기실 소파에 앉아, 손을 깍지를 껴가며 마주 잡고 한참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깍지 낀 이브의 왼손 약지에서 자수정 반지가 빛났다. 이브는 미츠자네의 어깨에 기대어 가쁜 숨을 내뱉었다. 숨이 옅어져 가는 걸 알기에 미츠자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브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두 사람이 함께했던 과거를 곱씹었다. 미츠자네가 생각이 났다는 듯 이브에게 말을 건넸다.

 “시내에 파르페 먹으러 갔던 거 생각나요?”

 “……응. 그 날, 오랜만에 몸이 괜찮아져서. 미츠자네가 아는 카페에서 이벤트를 한다기에 같이 갔었지. 어쩌다 보니 이벤트에 당첨돼서 파르페에 푸딩에, 많이 받았었는데.”

 “즐거우셨어요?”

 “응.”

 미츠자네는 다행이다, 하고 속삭이며 머리칼을 만져주었다. 긴 머리칼을 손에 한 번 감아 입술을 맞추고 고개를 들어 올리면, 기대어 있었던 이브가 고개를 들어 미츠자네를 바라보고, 그와 눈을 맞추려고 몸을 미츠자네 쪽으로 당겨 앉아 있었다.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시선은 맞닿아 있었다.

 “미츠자네랑 함께여서 즐거웠어.”

 미츠자네는 아무런 말도 없이 미소 지었다. 한구석이 슬픔으로 들어찬, 세상을 비추는 달빛보다 더 밝은 것만 같은 미소. 미츠자네는 이브의 생이 곧 끊길 것을 직감했다. 그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여기서 스러질 거야. 미츠자네는 이제야, 이제야 한참 아껴두었던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용기가 생겼다. 지금 말하지 못하면 영영 이브에게 닿지 못할 문장을 그의 여명이 한 시간도 남은 것 같지 않은 이제야 내뱉는다. 미츠자네는 이런 자신이라도 그는 정말 괜찮을지, 자신을 향한 의심과 이브를 향한 걱정이 함께 생겨났다.

 “이브 씨, 제 말 다 믿어주실 거예요?”

 “……미츠자네가 지금 나한테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네.”

 “당연하죠, 아무리 제가 평소에 장난을 친다지만…….”

 미츠자네는 한참 말이 없다가 이브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추었다. 이브의 눈은 언제나처럼 빛이 없는 석류색이었다. 그 아무런 감정이 깃들지 않은 눈마저도 애틋하게 사랑스러웠다. 미츠자네는 울음을 다시 눌러 참으며 이브에게 잔잔하게 고했다.

 “이브 씨는 늘 말씀하셨죠, 저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할 거라고, 그러니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제가 불쌍하다고……. 영영 사랑을 모를 제가 불쌍하다고. 하지만……. 하지만, 이브 씨.”

 미츠자네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 때문에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브는 손으로 미츠자네의 손을 토닥여주었다. 유약하고 가는 숨에 걸맞은,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못한 손짓.

 “응, 듣고 있어.”

 미츠자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시야에 습기가 차는 것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습기로 눅눅해지고 먹먹해진 음성으로 낮고 작게 속삭였다.

 “……사랑해요.”

 “……응.”

 “많이.”

 “……응.”

 이브는 이 순간, 처음으로 미츠자네의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한참 미츠자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 얼굴을 눈에 담았다. 그가 사랑한다고 고하는 순간을, 사랑한다는 말을, 사랑한다고 하는 얼굴을 한참이고 곱씹으려 했다. 이브는 웃었다.

 “고마워.”

 “……아니에요.”

 미츠자네가 따라 웃었다.

 “미츠자네, 나…… 은하수, 다시 보고 싶어.”

 “가요. 은하수 보러. 아까 그 자리가 좋죠?”

 “……응. 좋아.”

 이브가 다시 미츠자네의 에스코트를 받아 발걸음을 옮긴다. 미츠자네가 이브를 부축해 길고 긴 예식장 복도를 걷는다. 꼭 둘이서 왈츠를 추며 걷는다는 착각이 든다. 깨지지 않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달빛을 받아 반짝인다. 색색으로 물든 빛을 받으며 복도 끝까지 다다르면 다시 은하수가 보이는 예식장 앞 공간으로 돌아온다. 이브의 한 손에는 꿋꿋하게 부케가 들려 있었다. 몸에서 힘이 자꾸만 풀리는데도 부케만은 놓지 않겠다는 듯 꿋꿋하게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의 머리칼을 쓸고 지나간다. 이브는 같은 곳에 앉아서 한참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무거웠다. 눈을 감으면 안 되는데, 자꾸만 졸음이 쏟아지듯 눈이 감겼다. 이대로 있다가는 미츠자네에게 하려던 말도 뱉지 못할 것만 같아 그의 옷자락을 당긴다. 함께 은하수를 올려다보던 미츠자네가 고개를 돌려 이브를 바라본다.

 “있지, 미츠자네……. 부탁이 있어.”

 “네, 말씀하세요. 무어든 들어드릴게요.”

 “무척이나 잔인하고 아픈 부탁일 거야. 내가 하는 말이 더 듣고 싶지 않아질지도 몰라. 그래도 들어줄 수 있겠어?”

 “네, 당연하죠. 이브 씨의 부탁이잖아요.”

 불쌍한 미츠자네, 가여운 사람. 왜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 나였어. 이브는 그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꼭 고해야 하는 말만 수십인데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단어를 써버릴 수는 없었다. 이브는 한참 미츠자네를 보다가 약간의 미소를 섞어 말을 뱉었다. 이브는 말을 뱉으며 눈을 감고 싶었다. 그에게 너무도 잔인하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부탁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브는 울고 싶었다.

 “나를…… 내가 눈을 감으면, 나를 꼭…….”

 이브는 울음에 목이 막혀 문장을 더 뱉을 수가 없었다. 울지 말라고 했던 주제에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부끄러웠다. 미츠자네는 괜찮다는 듯 이브의 눈물을 천천히 닦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미츠자네의 말이 이브에게 전해졌다.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말해요. 제가 무엇을 못하겠어요. 이브는 숨이 진정되자 남은 말을 덤덤하게 내뱉었다. 언제나의 그 무감한 낯.

 “나를 꼭……. 잊어줘.”

 미츠자네가 눈을 크게 뜬다.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하고, 괜찮다고 몇 번을 달랜 것이 무색하게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흔들리는 고개가 감정이 북받칠수록 세차게 움직였다. 미츠자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한참 말도 못할 정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미츠자네의 목에서 한 번 긁힌 쇳소리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눈물에 잔뜩 젖어 축축하고, 먹먹하고, 어느 구석은 너무 많이 젖어 뭉개진 부분도 있었지만 견고한 문장이었다. 절대 꺾을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의지가 담긴 다급한 단어들의 나열.

 “싫어요, 못 해요. 죄송해요, 이브 씨……. 하지, 하지만, 제가 어떻게 이브 씨를 잊어요. 어떻게. 오늘 우리 결혼, 식이었잖아요. 저 안에서 이브 씨랑 두 손을 맞잡고 있을 때 맹세했어요. 평생 이브 씨를 좋아하기로. 그도 그럴게 우리 결혼했으니까, 절대 헤어지지 말자며 반지를 나눴잖아요. 이브 씨……. 죄송해요, 기억하게 해주세요. 계속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이브 씨를 계속……. 죄송해요, 죄송해요…….”

 미츠자네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이성적으로 감정을 가다듬을 수가 없어서 말이 자꾸만 쏟아졌다. 너무 간절해서 자꾸만 이브를 붙잡게 되었고, 너무 간절해서 자꾸 부정하게 되었고, 너무 간절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전부 포기할 수 있었다. 이브와 그리던 꿈, 미래, 함께 하고 싶었던 것들. 지키고 싶었던 것은 결국 이브의 미소였고, 이브와의 추억이었다. 잊힐 리가 없었다. 잊고 싶지 않았다.

 “알카이드에서부터 동쪽으로 가면 가장 밝은 별이 아크투루스, 그대로 내려가 스피카를 이으면 봄의 대곡선. 그리고 스피카에서 옆으로 손을 옮기면 거기에 데네볼라가 있어. 그렇게 봄의 대삼각형. 잊고 싶지 않아요. 이브 씨,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발 기억하게 해주세요.”

 이브는 잔뜩 젖은 낯으로 미츠자네의 볼에 파인 눈물 도랑을 지워낸다. 울지 마, 그런 말은 아무런 힘도 없는데 그런 말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제발 기억해달라는 말에 울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이브는 병실에서 많은 죽음을 봐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죽음 앞에 무너져가는 것을 봐왔다. 미츠자네는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가여운 사람……. 날 잊어야지. 그래야 네가 아프지 않을 수 있어.”

 “이브 씨를 잊어서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평생 아프고 싶어요. 벌써 잊었어요? 이것 봐요, 자수정 반지.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보라색. 제가 사람이고, 이브 씨가 하늘이잖아요.”

 미츠자네가 이브의 왼손을 끌어와 자신의 왼손 위에 얹었다. 두 개의 반지가 달빛인지 별빛인지 모를 것을 반사하여 빛났다. 이브는 절대 잊을 수 없다는 듯 말하는 미츠자네에게 더는 잊을 것을 종용하지 못했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떠가며 미츠자네의 뺨을 손으로 쓸고, 머리칼을 만져주고, 꼭 끌어안았다가 눈을 맞춘다. 미츠자네의 뺨에 도랑이 파이는 것을 계속 손으로 지워내었다. 울지 말라는 말은 더 하지 않았다. 눈을 가볍게 감고 있다가, 다시 떴다. 미츠자네의 얼굴에 일순 불안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이브는 가슴이 답답했다. 마치 알면 안 되는 것을 알아버린 느낌. 감각이 선명했다.

 “미츠자네, 나……. 깨달은 게 있는데,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어. 조금만, 적어도 하루만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바보같이, 이제 와서.”

 “괜찮아요. 이브 씨.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깨달았잖아요. 궁금해요, 이브 씨. 무얼 깨달으셨어요? 실례가 아니라면 물어봐도 될까요? 듣고 싶어요.”

 이브는 여전히 미츠자네의 뺨을 매만졌다. 미츠자네의 눈물이 겨우 멎었다. 이브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라가는 입술을 열었다. 언제부턴가 이브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 생각보다 많이. 아주 많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미츠자네를……. 너를, 좋아하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도, 많이 좋아해.”

 기대도 하지 않았던 좋아한다는 말을 처음 마주한 미츠자네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 감정을 가다듬을 몇 초도 허락하지 않았다. 미츠자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표정을 바꾸는 것뿐이었다. 놀랐다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울 것처럼 표정을 찡그렸다가, 맑고 투명하게 웃었다. 메인 목을 겨우 뚫고 음성은 작고 유약하고 먹먹했고, 진심이었다.

 “저도 많이 좋아해요. 사랑해요, 이브 씨. ……아주 많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미츠자네의 말을 가만히 곱씹던 이브는 진심으로 웃었다.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건지 믿기지도 않을 만큼 말갛고 해사하게. 얼굴이 웃음으로 희게 빛났다. 꼭 생기가 돌아왔다고 착각할 수 있는 얼굴.

 “고마워.”

 그게 이브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브는 그렇게 미츠자네의 품에서 부서졌다. 짧은 생을 마감하는 낯은 맑은 웃음이었으며, 마감하며 마지막으로 마주한 낯 또한 맑은 웃음이었다. 이브는 아무런 후회도 없이 눈을 감았다. 미츠자네는 잠든 듯이 스러진 이브를 한참 끌어안고 있다가, 이브의 속눈썹에 매달려 있는 눈물을 닦아내고 품에 부케를 안긴 채 그대로 안아 들었다.

 새벽을 맞아 아무도 지나가지 않고, 드물게 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길을 한참 걸었다. 이브가 미츠자네의 품에서 약간 흔들릴 때마다 미츠자네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동이 터올 시각인데도 어둡고 구름이 잔뜩 낀 게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이브 씨를 데려다 줄 때까지는 내리면 안 되는데. 미츠자네는 발을 빨리 놀렸다. 이브는 꼭 잠든 듯이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안온하게 안겨 있었다. 흔들릴 때마다 코르사주의 모조 보석이 부딪히며 플라스틱 소리를 내었다. 이 시간엔 샛별이 보였던 것을 떠올린 미츠자네가 고개를 들어도 별은 보이지가 않았다.

 미츠자네는 열려 있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 침실에 이브를 눕혔다. 분명 둘이서 예식장으로 출발하려고 마중을 나갈 때만 해도 이브가 직접 열고 나온 문이다. 잠그지 않아도 되느냔 말에 괜찮다며 끄덕였던 것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 걸 알고 있어서였나. 미츠자네는 이브의 머리칼을 제대로 정리해주고, 검은 구두를 벗겼다. 미츠자네는 이브의 왼손을 들어, 약지 부근에 입을 맞추었다. 영영 작별은 아니라고 해도 일종의 작별이다. 그에 걸맞은 예의를 보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몰래 들어온 것이니 서둘러 나가야만 했다. 미츠자네는 방 밖으로 나서려다 문득 책상에 시선을 두었다. 소설과 사진 한 장. 미츠자네가 선물했던 소설 밑에 깔린 것은 미츠자네, 자신이 찍힌 사진이었다.

 나가야 하는 것도 잊고 사진을 집어 들고 한참 보았다. 당황한 낯의 미츠자네가 카메라를 가리려는 듯 손을 뻗고 있는 사진. 언제 찍은 건지 감이 오지 않아 한참 보고 있다가 작은 탄식을 내뱉는다. 이브가 폴라로이드 카메라 받았다고 했던 날.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이브가 몰래 찍어버렸을 때의 사진이었다. 그의 증거로 사진 속 미츠자네의 다른 손에는 폴라로이드 사진 여러 장이 들려 있었다. 미츠자네는 무심결에 사진을 뒤집어 보았다. 거기엔 금색 얇은 펜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영원한 행복은 광활한 우주가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어.’

 이 또한 자신이 선물한 소설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이미 굳은 잉크를 손으로 한참 쓸다가 사진을 내려놓고 벗겼던 구두를 챙겨 신발장에 밀어 넣고, 현관문을 단단히 잠근 뒤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칙칙하니 잔뜩 어둡고, 구름이 더 버틸 수 없었던 건지 이슬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미츠자네는 안도의 한숨을 가늘게 내뱉더니 중얼거렸다.

 “이브 씨가 비를 안 맞아서 다행이다.”

 우산이 없으므로 그대로 비를 맞으며 걸었다. 시간상으로는 동이 틀 시간이지만 미츠자네를 비춰주는 햇살은 없었다. 이브의 집부터 미츠자네의 집까지는 도보로는 제법 거리가 있으나 미츠자네는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참 걸었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져 물을 머금은 옷이나 머리칼이 무거워졌다. 미츠자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참 걸었다. 비의 틈에 섞여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렀지만 미츠자네는 전부 빗물로 간주하고 닦아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으면 표정이 자꾸만 일그러지려고 해서 의식하여 얼굴을 무표정으로 돌려야만 했다.

 그렇게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주체할 수 없이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물이 쏟아진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한창 쏟아지는 소낙비를 피할 생각도 없이 소리 없이 흐느끼면서, 소리 없는 오열을 질척한 빗길에 씻어 흘리며 한참 걷고 있었다. 잊어달라고 하셨으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당신을 어떻게 잊어요. 눈가가 벌게지도록 눈을 비벼도 끝이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골목을 돌아 그대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미츠자네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마 밑이라 비를 맞지는 않았지만 미츠자네의 머리 위에서는 아직도 소낙비가 퍼붓고 있었다.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이브와 그리던 꿈, 미래, 함께 하고 싶었던 것들.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는데. 손으로 한참 얼굴을 덮고 있다가 손을 떼어내면 왼손 약지에 걸린 자수정 반지가 눈에 띄었다.

 이브가 하늘이 되고, 미츠자네가 사람으로 남으면 두 사람을 이어줄 반지. 미츠자네는 손을 모아서 입에 가져다 댔다. 눈물이 멎지 않았다. 추워서 떨리는 몸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알카이드에서부터 동쪽으로 가면 가장 밝은 별이 아크투루스……, 그대로 내려가 스피카를 이으면 봄의 대곡선……. 그리고 스피카에서 옆으로 손을 옮기면 거기에 데네볼라가 있어. 그렇게 봄의 대삼각형…….”

 미츠자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가는 건 금방이었지. 미츠자네는 물을 머금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천천히 걸었다. 누가 몸에서 힘을 쭉 빼간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전히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미츠자네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돌리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하늘을 한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있죠, 이브 씨. 저는, 이브 씨가 곁에 있어 줬으면 했어요. 계속……. 다른 걸 바란 적은 없었어요. 많은 걸 바라지 않았어요. 이브 씨가 저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함께 있을 수 있는 걸로 괜찮았어요. 곁에 있어 줬으면 했어요. 계속 같이 있고 싶었어요…….”

 미츠자네는 입을 다물고 하늘을 가만히 보다가, 비명을 닮은 헛웃음을 흘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천천히 발을 떼었다. 너무 눈물을 흘린 탓에 머리가 욱신거렸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감기를 연상하게 하는 오한이 등골을 타고 올라와 불쾌감이 깔렸으나 미츠자네는 그런 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자꾸만 헛웃었다가, 울었다가, 지친 듯 숨을 내뱉었다가, 꼭 미친 것 같았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괴로움뿐이었다. 목을 긁으며 타고 올라오는 비명을 그대로 내뱉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한참 정처 없이 걷다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그늘과 꽃향기를 겨우 의식해 고개를 들어 올리면 벚꽃이 비를 맞아 흐드러지게 지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손에 벚꽃 잎이 내려앉았다. 미츠자네는 빗물과 눈물로 엉망이 된 것도 다 잊고 눈을 감았다.

 이제 영영 볼 수 없을 것이다. 만지지도, 듣지도 못할 것이다. 마음에 뚫린 공허로 그가, 이브가 있었음을 되새긴다. 나의 봄.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나의 안식처. 나를 안아주던 품. 내 사랑. 평생 기억할 내 영원한 봄밤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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