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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라이더 가이무 본편의 강한 스포일러
발밑에 하늘이 드리운다. 정신을 차리려고 한참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어도 영 정신이 들지 않는다. 멍한 머리를 흔들고 난간에서 몸을 떨어뜨리며 난간을 휘감은 덩굴을 괜히 손으로 쳐낸다. 곧 전부 끝날 거란 생각에 믿기지 않는 감각 절반, 도래할 미래에 심장이 빠르게 두방망이질치고 마는 감각 절반이 뒤섞여 자꾸만 머리가 멍해진다. 하늘을 봐도 별 하나 빛나지 않던 자와메 시에 거대한 달빛이 드리운다. 곧 다 끝날 것이다. 나는 성공할 거고, 나는 10억이나 되는 인간의 메시아가 될 것이다. 그들의 유일신이 될 것이다.
누군가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고개를 굳이 돌리지 않고 한참 하늘을 바라본다. 문이 열리고서야 나는 뒤를 돈다. 달빛을 받으며 웃음으로 나를 마주하는 당신을 보며 따라 웃지 않는다. 문득 바람이 스쳐 지나가 당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흔들리는 머리칼, 그리고 가운 자락. 당신은 이따금 달빛을 받아 빛나곤 했다. 딱 오늘처럼.
“미츠자네 군.”
“료마, 씨.”
옥상 문을 잡고 있는 료마 씨가 웃으며 느릿하게 손을 흔든다. 가벼운 인사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슬슬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냔 뜻이다. 당장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나고 모든 게 다시 시작될 테니까. 위그드라실을 다시 살린 것도, 프로젝트 아크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은 것도, 그리고 그것을 성공으로 이끈 것도 전부 나다. 센고쿠 료마의 유일한 이해자로 남아, 당신의 유일신이 된 것마저도 나다. 당신이 나를 이해하고 내가 당신을 이해하는데, 우리 사이에 어떤 게 더 필요하며, 어떤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에게 한발 다가간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본다.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나, 미츠자네 군에게 주고 싶은 게 있는데. 아래에 준비해뒀어.”
그가 내게 손을 내민다. 그가 내민 손을 잡지 않고 지나쳐 계단을 내려간다. 그가 내민 손은 언제나 그런 뜻이다. 잡으라는 게 아니라, 이리 오라는 뜻이다.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의 손을 쥐지 않는다. 당신의 옆얼굴은 웃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도 오직 나 하나다. 그 사실이 안온하다.
늘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사무실로 들어가면 낯선 마네킹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순흑의 정장과 순백의 정장. 품을 보나 기장을 보나 흑색이 내 것, 백색이 료마 씨의 것이었다. 꼭 결혼식에서나 입을 것 같은 꼬리가 긴 연미복.
“내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준비했어. 내일 네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대로 프로젝트 아크는 완성돼. 그때 우리끼리 샴페인이라도 부딪쳐야 하지 않겠어? 아, 그래도 미츠자네 군은 아직 어리니까. 달콤한 논 알코올 칵테일로 해줄게.”
“뭐든 괜찮아요. 내일이면 전부 취하고 전부 내버리는 것까지 제 손에 달렸잖아요. 다 괜찮아요, 그래서.”
그를 보며 웃는다. 나를 마주하며 웃던 료마 씨가 문득 발을 돌려 내 어깨를 잡고 표정을 굳힌다. 짐짓 짓는 표정임을 다 알고 있지마는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나는 그를 여전한 미소로 마주한다. 료마 씨는 어느 구석 느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때가 되면 미츠자네 군은 나도 버릴 거니.”
한참 눈을 마주하고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다 알면서 묻는 것이 눈에 보인다. 형은 이런 질문에마저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웃기지 않을 수가. 심호흡으로 감정을 가다듬고 여전한 미소로 당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되물었다.
“료마 씨, 저를……. 저를 심신하세요?”
“그럼.”
“그런데 그런 걸 왜 물으세요.”
료마 씨가 내 어깨를 붙든 채로 헛웃음을 흘렸다. 그의 입가에 번져가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다는 듯, 입을 가리고 기침을 가다듬듯 감정을 가다듬었다. 그의 표정에서 일순 만족을 읽어내었다. 당연한 일이라며 치부하고는 옷을 살핀다. 지금 차려입은 정장보다 고급스럽고 신경 쓴 티가 나는 게 확실히 파티에 어울리는 복식服飾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선이 부드러워 우아한 느낌을 준다. 가슴에 꽂혀 있는 보라색 손수건이 꼭 쿠레시마 타카토라를 연상한다. 이제 더 그가 노엽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내 안에서 무언가 차갑게 식어버린 것 같았다.
료마 씨의 것을 살피면, 나와 비슷한 것 같으나 가슴에 장식이 달려 있었다. 순백의 정장이 순흑의 정장보다 퍽 화려한 느낌이었다. 어디라고 짚어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나 바라보고 있자면 그랬다. 취향이겠거니 하고 넘어간다.
“시착해봐도 돼.”
“괜찮아요.”
“왜?”
내게 마련된 책상에 앉아, 나른하게 턱을 괴었다. 쿠레시마 ‘미츠자네’라고 적힌 명패가 달빛을 받아 잠깐 빛났다가 말았다.
“료마 씨가 일을 허투루 하실 분은 아니니까요.”
“나를 그렇게까지 믿는 이유는 뭐야.”
“당신이 내 유일한 이해자니까.”
서리가 내려앉은 눈이 당신을 응망한다. 상황을 웃음으로 덮는 당신의 얼굴에서 많은 것을 읽어낸다.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은 희열이다. 당신의 기저에 깔린 희열을 읽는다. 당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나와 함께해서 기뻐? 내가 당신을 이해한다는 사실이 반가워? 많은 질문이 맴돌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구태여 뱉는 것보다 더 많은 방법으로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상에 반쯤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킨다. 내일 할 일이 많다.
“료마 씨는 계속 여기 계실 거예요?”
“글쎄, 어떻게 할까. 미츠자네 군은 들어갈 생각이지?”
“네, 내일 할 일이 많으니까요.”
“……잘 가.”
책상에 기대어 고장이 난 것을 흉내 내는 듯 느리고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손을 흔드는 그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건네고 덩굴에 집어삼켜 지는 위그드라실을 떠난다. 위그드라실이 전부 집어삼켜 지고, 결국 헬헤임의 숲이라는 재앙 아래 인류가 쌓아올린 모든 문명과 눈부신 것들이 아스라이 무너진다고 해도 이젠 상관없었다. 이게 전부 미친 생각이라도 치부된다고 해도 다 괜찮았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냈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내일부터 전 인류의 구원자이자 신이 될 텐데.
*
눈을 뜨면 햇살이 따사롭게 지옥을 내리쬐고 있었다. 언제 잠든 건지 모르겠다. 궁전 같은 저택의 계단을 타고 내려와 뒤를 돌아본다. 언제부턴가 잔상처럼 옆에 남아있던 당신도 보이지 않았다. 아, 당연했다. 나는 이제 당신의 그림자가 아니니까. 그딴 건 탈피한 지 오래니까. 저택을 눈으로 훑다가 괜한 생각을 한다. 내가 신이 되면 여기는 신전이 되겠구나. 어울린다.
위그드라실로 향하는 걸음에는 막힘이 없었다. 곳곳에서 인간이 아닌 것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만 무서운 건 없었다. 이 자리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저런 것들은 내 발치를 길 것이고, 나는 그들을 굽어살피며 베풀기나 할 텐데. 나는 문득 깨달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실 이런 게 아닐까. 군림하여 정점에서 굽어살피며 베푸는 것.
“저, 왔어요.”
의자에 앉아 등을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은 내 말이 끝나고도 밖을 바라보다가 여유롭게 의자를 반 바퀴 돌려 일어난다. 순백의 정장을 차려입은 당신이 천천히 내 앞으로 온다. 구두굽이 바닥에 부딪히며 울리는 소리가 내 고막을 천천히 때린다. 그의 손에는 어제 마네킹에 걸려 있었던 순흑의 정장이 들려 있었다.
“자, 미츠자네 군. 갈아입고 와. 축하할 일만 남았어.”
그의 말에 반항하지 않는다. 옷을 챙겨 바깥으로 나가 옷을 갈아입는다. 재질도 기장도 어디 하나 나쁜 게 없었다. 역시 당신의 작품답게 완벽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옷 한 벌을 내게 입히기 위해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가늠해보며 벗은 옷을 다른 곳에 걸어둔다. 내 팔을 쓰다듬으며 그간의 시간을 떠올린다. 망가진 영상을 재생하듯 과거를 다시 생각한다. 멍청하게 희망 따위를 노래했던 나는 이 순간, 완전하게 죽었다.
바깥으로 나가면 작은 테이블 위에 기계장치가 놓여 있었다. 그가 이 자리에 없으므로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보류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절망이 창궐한 바깥은 여전했다. 이따금 인베스가 땅을 기어 다니고 사람들이 그것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다. 자와메 시가 다 장난감처럼 보인다. 괜히 창문에 손짓을 한다. 인베스를 저쪽으로 치워버리고, 인간들을 반대로 끌어다 놓는다.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진 않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 차오른다. 문득 의문이 든다. 지금 도망치고 있는 저들은 센고쿠 드라이버를 가지고 있는 걸까. 커다란 창문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옅은 숨을 내뱉으며 생각을 털어버린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아니면 진즉 내가 숨통을 끊어 놓았을 테니까.
구두굽이 바닥에 부딪혀 내는 둔탁한 소리에 당신임을 직감한다. 테이블 쪽으로 가 프로그램을 건드린다. ‘REMOVE’라는 글자가 떠있는 것을 보고 저 사람도 참 인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어떻게 쿠레시마 타카토라 같은 인간과 발걸음을 나란히 한 건지. 당신을 돌아본다. 당신은, 나의 유일한 이해자는, 센고쿠 료마는 웃고 있었다. 그는 내 곁으로 와 속삭였다.
“자, 미츠자네 군. 엔터 키를 눌러. 그럼 프로젝트 아크는 완성 돼. 자, 할 수 있지?”
내 손짓에는 주저 따윈 없었다. 당연하지 않느냐 되묻는 대신 키를 누르면 화면에 “프로젝트 아크, 완성까지 1분 전.” 이라는 문장이 무기질하게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위그드라실이 한 번 흔들리더니 이내 고요해졌다. 10억이 맞추어졌다. 내 발자취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치고 스쳐 지나간다. 센고쿠 드라이버를 만들고, 구원의 손길처럼 베풀고, 천천히 센고쿠 드라이버가 없는 것들을 제거해나갔다. 그게 당연한 일인 듯 움직였더니 마침내 10억. 드라이버를 가진 10억이 전인류가 되었다. 10억 안에 내 사람들을 욱여넣고 그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삶은 원하지 않았다는 그들의 말에 흔들릴 뻔도 하였으나 료마 씨가 목소리에 다정을 담아 말해주었다. 내 행동은 옳다고. 그러니 내 행동은 옳은 것이다. 센고쿠 료마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런 것이다.
고개를 들었더니 ‘1분 전’이 ‘10초 후’가 되어 있었다. 곧 숫자는 줄어들어 5가 되고, 1이 되더니, 아예 숫자가 사라지고 “프로젝트 아크, 완성” 이라는 문장만 남게 되었다.
너무나도 고요하게 어떤 생명에 종말이 도래했을 거다. 10억을 위해 사라졌을 거다. 그럼에도 남은 10억은 태연하게 살아갈 거다. 센고쿠 드라이버를 찬양하고, 그것을 나눠준 나를 섬기며 목숨을 부지할 거다. 바깥에서 괴성과 비명이 섞여 은은한 소리를 가져다준다. 눈을 감고 그것을 들었다. 그게 꼭 선율 같았다. 지옥에서 올라온 악단의 연주. 고개를 들어 올리고 바깥을 본다. 바깥이 생경하게 보인다. 모든 세상이 다 내 발밑에 있는 것 같다. 괜히 소름이 돋아 옷 위로 팔을 쓸었다. 감각이 사이렌처럼 빠르게 돌아가며 번쩍인다. 꾹꾹 눌러 참고 있었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고 했던 독백이 기어이 입 바깥으로 새어나간다.
“나는 이 세계의 메시아야…….”
참을 수도 없이 웃음이 터진다. 테이블을 잡고 목을 긁으며 웃다가, 고개를 젖히고 한참 웃었다. 동시에 아름다운 협주곡이 위그드라실 건물을 채우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진다. 이 순간 전부 진심이었다. 닦을 생각도 않고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젖은 시야에 당신이 들어온다. 내 이해자, 내 유일한 이해자, 나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사람.
“울고 있네, 미츠자네 군.”
“……기뻐서요.”
그를 바라보며 희고 맑게 웃었다. 얼굴 근육이 움직이며 다시 눈물을 떨군다. 나는 료마 씨의 얼굴을 보며 희열을 읽는다. 가면무도회에 어울릴 법한 움직임으로 그가 내게 손을 뻗는다. 평소와 다른 움직임에 그에게 손을 뻗으면 그가 내 손을 덥석 잡고 허리를 감싼다. 꼭 왈츠라도 출 것 같은 움직임에 놀라 바라보면 그가 웃는다. 당신의 얼굴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가 본 적이나 있었을까. 료마 씨가 이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
“이 날을 기다렸어, 미츠자네 군. 이 날만을 기다려왔어. 미츠자네 군, 이제……. 너는, 내가 빚어낸…….”
“당신의 메시아.”
부드럽게 움직이던 발이 내 말에 뚝 멈춘다. 당신이 나를 내려다본다. 황홀경에 빠져 헤엄치고 있는 눈을 바라본다. 당신의 옷깃을 당겨 단호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고한다. 내가 당긴 탓에 네 얼굴이 가깝다. 자잘한 표정마저 읽힌다. 희열과 당혹, 그리고 광기가 섞인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본다. 내가 당신을 들여다볼수록 당신도 나를 들여다보겠지. 여유로운 미소마저 그려지는 내 얼굴은 당신이 보기엔 어땠을까. 차마 뱉을 수 없는 독백을 머릿속에 그렸다가 지운다. 료마 씨, 나 어때. 미쳐 보여?
“당신의 어린 이해자. 당신의 손으로 빚어낸 당신의 메시아, 맞죠.”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에 든다는 듯 당신은 웃더니 춤을 멈춘다. 고풍스러운 협주곡은 멎을 줄을 모르고 나와 당신을 축복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허리를 펴며 말을 이어가려는 당신의 팔을 당겨 춤을 이어나간다. 당신은 웃음을 터트린다.
“내가 너를 선택한 건 실수가 아니었어, 미츠자네 군.”
“나는 쿠레시마 타카토라와 다르니까. 그가 하지 못하는 걸 나는 할 수 있으니까. 당신을 이해하는 것도 다르지 않았어요. 료마 씨와 조금 더 빨리 대화를 해볼걸. 그러면 좀 더 편안한 길을 걸을 수 있었을 텐데.”
료마 씨가 발을 멈춘다. 당신을 따라 발을 멈추면 그는 어딘가 즐거움이 서려 있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며, 희열과 광기에 찬 말을 쏟아낸다.
“나 하고 싶은 게 생겼어. 미츠자네 군이 조금 더 신의 모습에 가까워질 거야. 신화나 설화에 나오는 그런 신의 모습이 된 미츠자네 군을 보고 싶어. 어때? 괜찮다고 해줄 거지? 너는 나를 이해하잖아…….”
나는 그에게 여유롭게 웃어주었다. 그가 내 손을 모아 쥐며 자신 쪽으로 가져간다. 꼭 기도하는 모양새다. 그가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나는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축복을 내린다. 마치 현세에 강림한 신과, 그의 유일무이한 신도다. 오만에 젖어 진정으로 그를 축복한다는 상상에까지 이른다.
***
그래,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못하겠는가. 내 어린 이해자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너를 위한 신전을 세우고 그 가운데 너를 앉힐 수만 있다면 무언들 못하겠는가. 내가 네게서 읽어낸 건 고상한 이상이나 전인류의 구원 따위가 아니었다. 발악과 광기와 비명과 여태 지저분하고 진득한 욕망, 갈증 따위였다. 전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 밑에 두고 싶다는 마음. 네 그 마음이 눈에 들었다. 나라면 할 수 있다는 말을 뱉으며 나를 직시하던 그 눈에서, 심연을 읽어내었다. 아무런 것도 들어있지 않은, 공허 그 자체를 눈앞에 두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고뇌에서 끌어올려 진 기분이었다. 같은 것을 바라보며 다른 꿈을 꿨던 나를, 이 세상에 이해자 하나 없어 허우적대던 나를 단숨에 끌어올린 게 구원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러므로 나도 너를 구원한다. 온통 쿠레시마 타카토라로 이루어진 너의 죄책감과 망설임을 걷어낸다. 네게 드리운 그의 그림자를 내 손으로 지워버리고 너를 끌어올린다. 온통 불안에 들어찼던 네가 내 손을 잡고 일어나 나만을 갈망하고, 내 이해한다는 문장에 안심하며, 나와 함께 걸어간다. 그 어떤 흔들림이 들이닥쳐도 내 말 한마디면 나를 굳게 믿고 나를 따른다. 네가 나를 구원하여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 쿠레시마 미츠자네, 너는 나 없이 목숨을 붙들지도 못할 거다. 그에게는 오직 내가 필요하다. 이 사실이 안온하다.
너를 위한 록시드, 너를 위한 드라이버, 너를 위한 발명품. 그것들은 전부 너를 위한 것들이다. 완성된 요모츠헤구리 록시드도, 조금 더 록시드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드라이버도, 그리고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것도. 만약 성공한다면 너는 인간도 오버로드 인베스도 아닌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신이다. 인간의 몸으로 신이 되었고, 이제 인간을 탈피하고 완전한 신이 된다. 네게 묻고 싶다. 미츠자네 군, 네 눈에 비친 나는 어때? 너는 나를 이해하잖아.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걷는다. 이따금 규칙적으로 바닥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 거기에 네가 있음을 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희끄무레하게 들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네가 있는 방문을 열면 침대에 앉아 구둣발로 바닥을 두드리는 네가 보인다. 한동안 나와 어울리느라 바깥에 나가지 못했는데도 지루해 보이는 기색 따윈 없다. 나지막하게 네 이름을 부르면 너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오늘로 끝이야. 자고 일어나면 전부 완성되어 있을 거야. 자, 미츠자네 군. 푹 자고 일어나. 나는 너를 위한 신전을 꾸미고 있을게. 일어나서 내가 마련해둔 너를 위한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을게.”
그는 내 말대로 고분고분하게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나는 모든 것을 행하기 전, 꼭 기도하는 듯 침대 끝자락에 걸터앉아 널 내려다본다. 너는 나의 어린 메시아. 나는 네 최초의 신도. 모두가 비극이라 손가락질하는 희극을 써내려가는 유일한 사람들. 금세 잠이 든 네 낯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다고는 하지만 일 분이라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더 빨리 내 연구의 성과를 보고 싶었다. 이 모든 걸 타카토라에게 제안했을 때 그는 받아들였을까. 아니, 아닐 것이다.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할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확신한다. 내가 쿠레시마 미츠자네를 선택한 것은 실수가 아니다. 방의 불을 환하게 밝히고 네 앞에 섰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끝나기를 네게 기도한다.
*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머리를 다시 질끈 묶었다. 다시 스카이타워로 향해 테이블을 치우고 커다란 모노톤의 벨벳 의자를 가운데에 둔다. 입구에서부터 의자까지 긴 붉은 융단을 깔아둔다. 네게 곧바로 향하려면 그 융단을 밟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너를 만나러 오는 이가 누구든 너를 경배하게끔. 없던 경외심마저 그 마음에 공포처럼 자리하게끔. 이 넓은 공간에 메시아를 위한 자리, 메시아를 위한 융단뿐이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당연한 게 아닌가. 신전에 신을 위한 구조물 말고 또 뭐가 필요하지?
스카이타워를 한 바퀴 돌면서 복도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길 기다린다. 실패할 일은 없으므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풍스러운 커튼을 치는 게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신께서 바깥을 굽어살피시려면 그런 것은 없어야 하므로. 창을 쓸다가 손을 떼고 문득 바깥을 보면 해가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지옥이 전염병처럼 창궐한 곳을 살펴보아도 아무런 기분이 안 든다. 누군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을까. 무기질하다. 누군가의 종말을 상상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바깥에 흥미가 떨어질 때쯤, 복도를 울리는 투박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스카이타워 문이 열렸다. 석양을 받아 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너는, 웃고 있었나.
“낮이 내려앉고 있네요. 료마 씨. 얼마나 지났어요?”
“적당한 때에 왔어.”
네가 융단을 밟더니 고개를 숙인다. 당연하다는 듯 네게 손을 뻗었다. 자, 이리 와. 미츠자네 군. 이리 와서 네 얼굴을 보여줘. 그리고 나를 축복해. 메시아가 재림했다고 선언해. 그럼에도 내가 필요하다고 해! 나를 이해한다고 해, ……미츠자네. 너는 나를 이해하잖아.
쿠레시마 미츠자네가, 메시아가, 얼굴을 드러내었다. 굴러가는 두 눈의 색은 달랐다. 완전한 심연이 담긴, 완전히 검게 죽어버린 동공엔 아이러니하게 생기가 담겨 있었다. 말 그대로 신의 눈을 빼앗아 그대로 네게 박아 넣은 인상. 전부 성공한 거다. 내 손이 너를 태어나게 했다. 진실된 신에게 숨을 불어넣은 게 다름 아닌 나다. 어쩜 이렇게 달콤할 수 있을까. 내 손에 금단의 과실이 들렸다. 미츠자네, 너는 네 이름자처럼 빛나는 과실이 되었구나.
자리에 누울 때만 해도 흰 셔츠를 걸치고 있었던 네가 검은 연미복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제비 꼬리처럼 갈라진 끝이 네가 걸어올 때마다 흔들렸다.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다는 듯 네 걸음엔 주저가 없었다. 검은 벨벳 의자에 앉아 느른하게 등받이에 기댄 너는, 느릿하게 살아있는 눈과 죽은 눈을 동시에 몇 번 깜빡였다.
“료마 씨.”
“응.”
고개를 돌린 네가 나를 바라본다. 내가 빚어낸 나의 신이 나를 바라본다. 군림한 자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손길이 눈에 띄었다. 그의 옆에 서 있다가, 허리를 약간 숙여 당신과 눈을 맞춘다. 그가 여유롭게 웃어서, 나도 함께 웃었다.
“뭘 할까요, 앞으로? 일단 만끽할까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잖아요. 허투루 쓰기는 아깝다고 해도.”
“그래, 좋아. 네 의견을 물어볼게. 무엇부터 하고 싶어?”
“글쎄요. 구원부터 해야 할까. 메시아니까요.”
“인류를…….”
여기까지 와서 이해자를 잃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네가 말하는 인류를 지키는 것과 쿠레시마 타카토라가 말하는 인류를 지키는 것은 완벽히 다른 의미니까. 그러니 여전히 웃을 수 있었다. 눈꼬리까지 접어가며 눈웃음을 지으면 바람이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흑색과 자색의 눈이 내게 시선을 걷어내지 않고 물었다.
“좀 더 얼굴을 굳힐 것 같았는데. 인류를 구원한다느니 하는 말엔 질렸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너는 타카토라랑 다르잖아. 네 구원은 인류를 위한 게 아니라 너를 위한 거잖아. 네가 하는 모든 것은 너를 위한 거니까. 대의라느니 하는 말에 질렸어도 네 말에 질릴 리가 없지. 넌 모두를 위해 움직이지 않고, 너를 위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니까. 내 말이 틀려?”
“꼭 제가 료마 씨를 위해서는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이 말씀하시네요. 이 모든 걸 혼자 했던 것 같잖아요. 이거 다…….”
너는 말끝을 흐리며 일어나 내 앞에 선다. 네가 움직이는 대로 허리를 펴고 네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네가 고개를 약간 들어 나를 응망한다. 시간이 하나도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다. 아, 나의 어린 메시아여. 앳된 얼굴과 성숙한 얼굴이 교차하는 너를 들여다본다. 네 눈엔 이제 심연뿐이다. 내 눈도 같은 꼴을 하고 있을까. 네 말을 중간에서 가로챈다.
“이거 다, 우리가 같이 한 거잖아.”
“아시면서.”
너는 색이 다른 두 눈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았다. 넌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잡고, 네게로 끌어가 눈을 감았다. 기도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건 메시아가 내려주는 축복 기도다. 해가 완전히 기울고 하늘이 남색으로 물들었다. 네 나지막한 음성을 피할 수 없다.
“료마 씨, 듣고 싶은 말이 있어요.”
“메시아를 위해 못 해줄 말도 있을까?”
너는 고개를 약간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황홀경에 빠진 얼굴을 했다. 다른 이가 이 표정을 본다면 혹자는 미쳐버렸다 말할 것이고, 혹자는 망가졌다 말할 것이고, 혹자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세간이 늘 그러했던 대로. 하지만 다 틀렸다. 어떻게 이런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쿠레시마 미츠자네는 지금 웃고 있는데, 너무나도 기뻐 보이는데.
“저를 이해하세요?”
“응.”
“늘 제 곁에 있어줄 거예요?”
“그럼.”
“……당신을 내 첫 번째 신도로 명명해도 될까요.”
헛웃음이 나왔다. 걸작이다. 감히 그 말을 네 입에 담은 것조차 명작이다. 네 손을 놓고 쭈그려 앉아 너를 올려다본다. 경배하고 경외하며 존외하며 외경해야 하는 신 앞에서 내가 더 높을 수는 없을 순 없는 일 아닌가. 내가 이렇게 몸을 낮춰야만 네가 날 내려다볼 수 있다. 아, 내 어린 메시아. 너무나도 어려서, 너무나도 여려서, 내가 떠밀면 그대로 절망으로 떠밀려 부서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자신이 신이 되었다는 오만에 젖어 신도를 찾는 너. 앞으로도 더 강해지려고 발버둥을 치겠지. 나를 계속 네 유일한 이해자로 곁에 둬. 내가 너를 위해 무어든 할게.
그러니 내 유일한 이해자로 내 곁에 머물러. 나를 절대 떠나지 마. 네 눈에 오롯이 나를 담는 시간을 지우지 마. 고하지도 못할 생각을 잇다가 한 박자 늦게 답한다.
“당연히 그렇게 해주는 것, 아니었어?”
“일어나세요, 그럴 필요 없잖아요.”
네 말에 행동을 취하지 않고 다만 가만히 웃자, 네가 내 팔을 당겨 나를 기어코 일으킨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을 한 너에게 여전히 미소로 응한다.
“이건 메시아가 베풀어주는 자비인가?”
“나를 떠받드는 건 다른 사람이나 하라고 하죠. 떠받들게 되면 나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료마 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를 이해해야죠. 당연히 그러실 거죠?”
네 눈에 서린 약한 두려움을 읽는다. 무얼 두려워해. 이해자를 잃는다는 불안은 이미 알고 있으므로 너를 비웃지도, 네게 흥미를 잃지도 않는다. 네 어깨를 잡고 돌아서서 네게 문을 보여주듯 어깨를 살짝 돌린다. 내 얼굴은 필시 편안하고 만족스러우며 다정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네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걸 보아 너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네 귓가에 속살거리기만 하면 된다. 네가 충분히 안정할 수 있도록. 안정하여 우리를 다스리는 데에 서슴없을 수 있도록.
“당연하지. 그러니 넌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마. 내가 너를 이해하고, 네가 나를 이해한다는 건 절대 거짓이 될 수 없는 참인 명제고, 절대 가언이 되지 않는 정언이야. 그러니 미츠자네 군, 너는 오직 이 세상을 어떻게 네 입맛에 맞추어 재단할지 생각해. 난 네 신도잖아. 언제나 네 곁에 있어. 네가 세우라면 세우고, 부수라면 부술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네 웃음소리가 스카이타워를 채운다. 만족감과 광기, 그리고 희열, 희열, 희열, 희열. 희열을 끼얹은 웃음소리가 위그드라실을 채운다. 그 어떤 교향곡보다 아름답고 그 어떤 광상곡보다 미쳐 있었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
내 손으로 완전한 신을 빚어낸 후, 이 주 정도가 흘렀다. 헬헤임은 완전히 세계를 뒤덮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갔다. 개중 몇은 견디지 못하고 드라이버를 차지 않은 채 헬헤임의 열매를 먹어버리고 말았으나 그들 또한 메시아께서 구원해주었으니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헬헤임 위에 세울 것들을 고안하고 있으니 갑자기 노트북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짧고 다급하게 울리는 사이렌이 집중을 깨트리자 일순 예민해져서는 조금 거칠게 경보음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했다. CCTV를 통제하는 창이 뜬 걸 확인하고서야 이 노트북이 보안을 관리하는 노트북이라는 걸 깨달았다. 위험을 감지한 CCTV가 비추는 곳이 보안용으로 막아뒀을 터인 출입구인 것을 깨닫자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지만 이내 머릿속으로 그들을 상상한다. 이 문을 알 수 있는 건 그들밖에 없으므로. CCTV 화면을 확대하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예상했다. 쿠레시마 타카토라, 그였다.
당연하지만 침입자를 막을 대책은 있었으나 타카토라를 막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그는 내가 아니라 자신의 동생을 구하러 온 것이다. 그러니 그의 얼굴을 본다면 당연하게도 절망에 절망하여 포기할 것이다. 그의 얼굴이 상상이 되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유일한 신이자 이해자가 있는 곳으로 가는 내내, 복도에 웃음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으며 웃어야만 했다.
스카이타워의 문을 열자 너는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건지, 바깥을 보고 있었던 건지 창문 근처에서 발을 멈추더니 내 쪽으로 발을 돌렸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가오며 여유로운 음성으로 말을 붙였다.
“무슨 일 있어요? 연구에 차질이 생겼나요? 아니면 필요한 거라도 있어요?”
“아니. 아무래도 너를 만나러 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알려주려고. 나도 옆에 있어도 될까? 나도 오랜만에 보고 싶거든, 그 사람 얼굴.”
“네, 안 될 이유가 있겠나요.”
네가 벨벳 의자에 앉고, 나는 네 옆에 섰다. 팔걸이에 두 팔을 얹고 다리를 꼰 채 열릴 문을 응망하는 너는 말 그대로 신의 작태綽態를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너의 하나뿐인 신관이 되는 걸까.
“조금 걸릴지도 몰라. 네가 어디 있는지는 모를 것 같거든.”
“괜찮아요. 오 분이든 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기다려주죠. 내게 허락된 시간은 많으니까. 물론, 원하시면 함께 기다려도 돼요. 보고 싶은 얼굴이라고 하셨으니까.”
응, 옅은 웃음을 동반해 네게 대답을 보내고는 자리에 서 있었다. 한 시간도 세 시간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는 딱 십 분 만에 스카이타워에 문에 손을 올렸다. 역시 위그드라실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는 건가.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에 미츠자네는 자세를 고쳐 앉았고, 나는 시선을 문에 고정했다. 곧이어 문이 다급하게 열렸고, 쿠레시마 타카토라가 붉은 융단을 밟았다.
“미츠자네!”
타카토라의 다급한 목소리와 얼굴. 그와 상반되게 너무나도 침착하고 여유로운 너.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 그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타카토라는 천천히, 그리고 너무 정직하게 융단을 밟으며 신이 되어버린 제 혈육에게 다가섰다. 그 정직이 너를 죽일 텐데도.
“미츠자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더 돌이킬 수 없기 전에 돌아가자.”
메시아께서는 옅게 코웃음을 치더니 고개를 약간 까딱이며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무엇이라니, 미츠자네. 네가 저지른 모든 과오를…….”
타카토라는 걸음을 급작스럽게 멈추고 놀란 눈으로 제 혈육을 응망했다.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듯 입을 다물고 충격이 서린 하고 있는 걸 걸 보아하니 발견한 것이다. 내가 신의 눈을 빼앗아 내 메시아에게 넣어준 그 심연을 닮은 눈을.
“미츠자네……. 대체 어디까지 선을 넘은 거지. 또 얼마나 선을 넘을 셈이야. 자,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의사 또한 충분하게 확인했어. 너만 돌아오면 돼. 모두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괴로움에, 절망감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제 혈육의 괴로움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메시아의 낯을 보며 애써 웃음을 누른다. 즐거워서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는 감정까지, 모두 안으로 눌렀다.
“난 안 돌아가.”
차마 뭐라고 말을 잇지도 못하고, 본능인지 이성인지 모르겠으나 내게 눈빛을 보내는 타카토라의 눈에서 다급함을 읽었으나 난 이제 그의 편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 이해자를 그만둔 건 타카토라였다. 그러니 나는 그의 편일 필요가 없지 않나. 고개를 약간 들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특유의 표정을 짓는다. 적어도 이 위그드라실에 네 뜻을 이뤄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불쌍하고 멍청한 쿠레시마 타카토라.
“형. 일단 내가 뭘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게 쿠레시마잖아. 정점에 서서 내가 모두를 굽어 살피며 베풀어주는 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잖아. 형, ……왜 그렇게 슬프게 바라보고 있어. 타카토라 형, ……칭찬해줘.”
타카토라는 아무런 말도 없이 신이 되어버린 제 혈육을 바라보기만 했다. 내 예상이 맞았다. 절망에 절망해버릴 거라니까. 아무런 말도 못하는 꼴을 보고 있으니 약간은 우스웠다. 저 자리를 박차버린 게 누구였는데.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메시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위선적인 다정을 담아 속삭였다. 입꼬리는 어쩔 수 없이 올라갔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래요,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자리에서 일어난 메시아는 타카토라의 앞에 서서 손을 약간 들었다. 부드러운 손짓을 따라, 스카이타워 창문 하나가 곧 헬헤임에게 잡아먹혔다. 숲은 이미 메시아의 것이었다. 내가 신의 눈을 빼앗아 내 메시아에게 심은 덕분에. 이 모든 것이 나의 성과다. 이토록 기쁠 수가 있나. 숲이 창문을 뒤덮는 것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형, 나는 메시아야.”
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따라 순흑의 연미복이 흔들렸다. 이 스카이타워에 머물 땐 너는 늘 그 옷이었으므로. 이따금 무료하면 너는 여기서 그날의 교향곡을 재생했다. 나는 그럼 내 순백의 연미복을 차려 입고 너와 한참 논 알코올 칵테일 따위를 부딪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한참 떠들었었지. 타카토라, 너는 영영 이해조차 하지 못할 말들을 나누어가며.
“나는 여기서 떠나지 않아. 나는 여기 있을 거야. 여기, 료마의 곁에. 형, 타카토라 형.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웃어 줘. 형이잖아. ……이해 못 하겠어? 어쩔 수 없지.”
너는 흥미가 떨어졌다는 눈으로 자리에 풀썩 앉아 팔걸이에 팔을 얹고 턱을 괴었다. 느릿하게 발을 까딱이는 대로 구두가 융단을 스치고 지나갔다. 돌연 메시아가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으니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나를 이해하는 건 료마로 충분해. 료마가 있는데, 또 다른 이해자가 필요한가?”
그 말을 듣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을 나의 어린 메시아에게 내맡기며, 눈을 내리깔고 작게 속삭였다. 눈앞의 작고 달콤한 절망을 보지 않을 정도로, 내 어린 이해자, 내 어린 메시아, 이토록 작고 어리며 여린, 내가 빚어낸 신. 쿠레시마 미츠자네의 음성이 달콤했으므로.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음성에 희열이 들어찼다.
“우리 사이에 다른 사람 같은 게 필요했었나.”
그럴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