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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혼의 그림자

 

※ 본편에는 없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경축의 장소, 그 안으로는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으나, 천장에 가득 박혀 있는 크고 작은 인공조명들은 자연의 빛 따위는 필요치 않다는 듯 환하게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공간을 양분하듯 실내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융단이 화려한 무늬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그 끝에 자리한 문은 무겁게 닫혀 있었다. 융단의 다른 한쪽 끝, 그 너머에는 평소와 달리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가 있었다.
   어느 때보다 까맣게 식어 있는 눈동자가 끼리끼리 수군거리는 이들을 조용히 훑었다. 찰 만한 자리는 모두 차 있었다. 이러한 종류의 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답지 않게 소란스러움이 덜한 것은, 하객들의 지위 때문인 듯했다.
   그 수선함 아래에서 이쪽은 조용히 목을 가다듬었다. 저쪽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드디어 OK 사인을 전달해 온 것이다. 그리고 곧, 또렷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웅성거리는 소음을 꿰뚫듯 선언한다.

   “신랑 입장.”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나던 조명의 무리가 한순간 빛을 잃자, 곧이어 굳게 닫혀 있던 뒷문이 갈라졌다. 실내의 어둑한 그림자 사이로 하얀 빛의 가닥이 뻗어 들어왔다. 하객들의 속삭거리는 소리만 가득하던 장소에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중앙으로 난 길 위로 하얀 구두가 또렷한 소리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가지런하면서도 힘이 들어간 발걸음이었으나, 특유의 여유는 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언제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던 발은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이 도달해야 할 곳을 잘 알고 있으리라.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샹들리에, 그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하얀 몸은 더할 나위 없이 빛나고 있었다. 훤칠하게 뻗어 있는 다리와 조금 잘록하게 들어가 있는 허리선, 넓게 펴진 가슴과 어깨, 그리고 여느 때처럼 표정 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눈, 잘 정리하여 넘긴 머리칼과 깨끗한 이마……. 아름답다고 칭하기에 부족함 없는 모습을 바라보며, 목울대를 넘겼다. 곧게 뻗은 길 위로 뚜벅뚜벅 무게 있게 울리는 구둣발 소리는, 날뛰는 가슴의 고동을 그 느긋한 목소리로 달래 주는 듯했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큰 그의 키에 더할 나위 없이 보기 좋게 들어맞는 턱시도는 이 손으로 직접 고른 것이었다.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단 하나의 티도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골라내어 그에게 선보인 것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이 순간의 그는, 우에스기 씨는 그 어느 때보다 수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걸음이 멈춰 서는 순간, 심장은 싸하게 식어 갔다. 찬란히 빛나는 것만 같은 그 풍모는 화려하게 쌓아 올린 얼음의 성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황홀한 모습으로 비친들, 손 닿은 이의 몸을 싸늘하게 얼리고 마는 것이다. 차가운 입김을 삼키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연다.

   “신부 입장.”

   또 한 번, 뒷문이 열린다. 그곳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우아한 자태의 여인이 어둑한 예식장에 달빛을 이끌고 온 듯 서 있었다. 등 뒤로 아름답게 늘어지는 트레인이 사락사락 속삭이며 발소리를 감추고 있었으나, 여인은 분명히 한 걸음 한 걸음 단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구두 소리조차 죽인 단아한 두 발이 그의 옆에 멈추었다. 또렷하고도 강직한 눈동자를 빛내며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는 여인은 그렇게 나의 주인과 나란히 서 있었다. 언제나 나의 자리였던 곳이었다.
   눈앞이 아득히 멀어짐을 느끼면서도 마이크를 앞에 둔 입은 막힘 없이 대본을 읽고 있었다. 아니, 종이 위의 글자는 이미 한참 전부터 허공에 부유하는 듯했으니, 이것은 머릿속 어딘가, 의식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제멋대로 인출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반지를 낀 손가락은 혼인 서약서를 들고 있었다.

   “…… 키쿠는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키쿠[]. 이름이 사람을 결정하는지, 사람에 이름이 따라오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어쨌든 그 이름자는 점잖으면서도 부드러운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강인하며 현명했다. 으레 부모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신부가 단신으로 버진로드를 걸은 것은 단순히 그녀가 양친을 모두 잃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우에스기가에 비할 만한 집안의 인물이었다. 그 가문의 이름 아래 경영되고 있는 회사는 SLPM에 이어 늘 언급되곤 할 정도였다. 본래 회사의 주인이었을, 그의 부모가 모두 떠났음에도 회사가 제 몸집을 유지하며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에는 키쿠가 적잖게 힘을 보태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이름에 걸맞은 능력도 있었으며, 그만큼의 인망도 두터운 인물이라는 듯했다.
   어떤 면으로든 우에스기 씨에게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서도 우에스기 씨는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리라.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원만하게. 그 말을 곱씹으려니 입에서 쓴 물이 올라오는 듯했다. 그래, 양측의 합의만이 원만한 결혼의 조건이라면 이것은 분명히 ‘원만하게’ 이루어진 식이 되리라. 반대하는 사람 한 명 없는 혼인이었다. 가문과 가문, 회사와 회사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들어 필연이 되고 만 이 결합에 고개를 저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정략결혼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이런 결과를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부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있을 만한 감정이 저들에게는 없을 것이었다. 애정이 부재한 채 매듭지어진 관계. 축복의 현장이 되어야 했을 이곳조차도 가면을 쓰고 앉아 있는 이들투성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거짓이었으며, 그 가운데 진실한 것은 자본과 권력뿐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감상에 빠져 현실을 곱씹는 사이, 예식은 어느덧 막바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축복이 쏟아져 나오는 결혼식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그리고 새로운 시작점이었다.
   고개를 털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자연히 입이 벌어졌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신랑 신부의 행진이 있겠습니다.”

   하얀 걸음걸음이 길을 떠난다. 마주 잡은 손에는 새로운 가정의 탄생을 상징하는 예물은 존재만으로 축복을 대신했다. 빛이 멀어져 갔다. 나의 옆이 아닌 곳에서, 더욱 먼 곳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저들에게 결별이란 오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없다고 한들 이 관계의 연결 고리는 책임과 의무가 대신할 테고, 자신의 사람이 된 이에게 우에스기 씨는 언제까지고 성실할 것이며, 그러는 가운데 사랑이 없는 자리에는 신의가 다져질 터다. 그는 어느 순간이든 반려의 옆에 서 줄 것이며, 자신의 옆자리를 기꺼이 내어 줄 것이다. 우에스기 씨의 반려자이기에 나는 그녀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만 할 것이다.
   황금빛의 축포가 터졌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던 무수한 빛의 무리가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가라앉아 하얀 어깨들 위를 수놓기 시작했을 때, 나는 눈을 감았다. 강렬한 빛무리에, 그 찬란함에 결국 눈이 멀어 버린 사람처럼, 세상의 모습을 차단했다.
   내가 선 곳은 그의 옆이 아니었다. 영원히 넘볼 수 없게 된 옆자리. 순백의 예식에서 오로지 나의 자리만이 그림자처럼 새카맣게 타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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